대한민국에서 혐오와 갈등은 존재할까?
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렇게 실존적인 형태로서 유의미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의 사회 속 혐오와 갈등은 어떤 형태일까? 그것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형태의 인종차별과 남녀갈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그런 형태의 혐오와 갈등은 존재할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있어 혐오와 갈등이 표면화되었다고 믿는 시초는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그 당시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사건만을 본다면 여성혐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것이다. 그저 조현병 환자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 무차별 살해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우리는 여성혐오와는 전혀 관련이 없던 것일까?
과거 우리들 역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무의식적인 형태의 무시는 존재했다. 그것은 과거와는 다른 약한 형태의 더 은밀한 형태로 지금까지 말이다. 근데 그것이 사회에 혐오와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10년대에 여성에 관한 혐오가 사회 내에 존재했을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과 폭행은 존재했으며 지금도 존재한다. 근데 그것이 여성에 대한 혐오는 아니었다. 둘은 다르다. 갈등은 존재했을지라도, 혐오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과 같은 혐오와 갈등의 시대에 살고있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하다. 우리는 미국의 혐오와 갈등을 수입했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갈등이, 남성에 대한 혐오와 갈등이 생긴 것은 그 이후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혐오와 갈등이 사회의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올드 미디어들이든, 뉴 미디어들이든, 댓글들이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은 현 시점에서 남녀혐오와 갈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은 여전히 젊은 세대들을 20대 개새끼론과 MZ 세대라는 말로 규정지을려는 기성세대들의 편견과 아파트 불패 신화로 사회를 장악한 기성세대들을 보며 자신도 그 범주에 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하는 젊은 세대들 간의 경제적 차이에 대한 간극이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현재 이 세대가 갖는 간극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분노를 해결할 대안을, 기성 세대들에게는 편견을 없앨 젊은 세대들과의 많은 접촉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젊은 세대들에게 집을 싸게 살 방도를 줘야 된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분노의 근본은 절대 집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가장 큰 분노는 자기들 세대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다고 본다.
여타 선진국에서 우리는 출산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선진국들은 현재 여러가지 형태의 혐오와 갈등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며 그걸 선진국의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유럽은 난민에 대해서, 미국은 인종에 대해서 말이다. 근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선진국들의 출산율은 절대 1퍼센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출산율 0.84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새웠다. 이건 정말 엄청난 업적이다.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말이다. 저들 선진국들이 겪는 실질적인 혐오와 갈등으로도 만들지 못한 수치라는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길래 이런 수치가 나타났을까? 혐오와 갈등으로? 앞서 말했다싶이 우리 사회의 이런 출산율 수치는 우리에게 있어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형태의 혐오와 갈등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회의 전무후무한 수치는 결국 젊은 세대들의 무기력함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을 못 산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결국 이러한 무기력함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무기력하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절대 젊은 세대들에게 주체적일 수가 없게 구조가 잡혀있다. 왜 코인과 주식에 열광적일까? 이러한 광풍의 시작은 언제나 젊은 층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젊은 층들의 삶은 학교와 학교와 학교이다. 그리고 그런 학교 교육 역시 예체능은 사라지는 추세가 된지 벌써 몇년이 흘렀다. 사회는 우리를 닭장 안 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들 그렇게 코인과 주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닭장이라는 프레임이 너무 강력한 사회에 살고있으니 그러한 닭장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코인과 주식 같은 강력한 외부의 힘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약을 보여주는 모피어스를 떠올려보자. 네오가 결국 자신의 세계가 가짜라는 프레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절대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모피어스라는 외부의 강력한 힘이 결국 네오를 네오로 존재하기 위한 첫 걸음을 때게 해준 것이다. 근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벗어던진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여전히 이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가 작용한다. 이제는 그런 말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라고 이야기된지도 몇년이 흘렀다. 과연 그럴까? 여전히 코인이라는 형태로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는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게 언제일까? IMF시기 이후 벌어진 규제의 완화부터이다. 결국 사회를 안정화시키는 것은 젊은 세대들을 위한 경제적이고 제도적인 보호다. 대한민국은 IMF 터지기 전에 불평등이 정말 낮은 나라중 하나였다. 경제가 고속성장 중이기도 했지만,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여러 보호책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IMF로 한번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지금의 사회에서 살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미국식 혐오와 갈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뚜겅을 덮어놓고있다. 마치 일본의 이런 속담과 같이 말이다.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는다, さいものにふたをする,쿠사이모노니후타오수루”
출처 : 뉴시안(http://www.newsian.co.kr)
그리고 이를 잘 들어내는 것이 있다. 우리 사회가 믿는 미국식 혐오와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서만 이라는 점이다. 정말 혐오와 갈등이 문제라면 이미 사회적으로 연쇄적인 혐오와 갈등에 대한 대안과 보완을 위해 여러 시위들이 벌어졌거나 미국처럼 사회적 소요가 일어났을 것이다. 근데 우리는 어떠한가?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인터넷 속에서만 익명성에 기대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 사회의 혐오와 갈등은 사회의 감정쓰레기통과 별 다를바가 없는 역할이다. 그저 오늘 하루의 고된 일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있어 0.84가 보여주는 의미는 이젠 이 나라의 미래와 젊은 세대들에게 더이상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0.84가 보여준 사회적 영향이 실질적인 위협 수준이 되야 대안이 시작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무기력한 젊은 세대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다. 정말 이 사회의 혐오와 갈등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사회의 미래와 가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나와, 당신이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는다, さいものにふたをする,쿠사이모노니후타오수루” 며 폭탄 돌리기를 할 뿐이다.

모두가 네오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사이퍼일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는 결국 매트릭스 안의 평범하게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근데 매트릭스 자체가 불행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디 난 우리 모두 살아가는 이 매트릭스가 유지 가능한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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